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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파뇰은 왜 이렇게 바르샤를 좆같이 대할까?

    본문



    El Derbi Barceloni


    sdw.jpg 에스파뇰은 왜 이렇게 바르샤를 좆같이 대할까?



    FC 바만 만났다 하면 비신사적인 행위와 거친 플레이로 일관하며 적대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RC

    같은 연고지를 삼는 팀끼리 경쟁 의식을 보여주는 건 흔히 있는 일이나, 두 팀의 관계는 일반적인 것과는 사뭇 다른 듯 하다

    그 이유는 두 팀 간의 더비 의식이 비단 연고지만을 두고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와 에스파뇰 사이의 대립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조금 먼 과거로 떠나보자

    1899년 11월, FC 바르셀로나가 조안 감페르에 의해 창립되었다

    FC 바르셀로나는 라 리가의 전통과도 같은 외국 선수(특히 남미) 영입을 적극 찬성하며 클럽의 주 정책으로서 삼기로 결정했다

    사람이 많이 있는 공간에는 뜻을 달리 하는 무리들이 있기 마련

    외국 선수 영입 정책에 반발심을 품고 있던 카탈루냐 지방 내 대학생들은 그들만의 팀을 결성하기로 마음먹었다

    1900년 10월, 카탈루냐 대학생들의 주도 하에 RCD 에스파뇰이 창립되었다

    팀 명인 에스파뇰은 스페인의 카탈루냐식 발음인 에스파냐에서 따왔는데

    여기서 우리는 에스파뇰을 창립한 학생들의 민족주의적 색채가 얼마나 진했는지 여실히 체감할 수 있다



    시작부터 엇갈린 관점으로 창설된 두 팀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것은 1930년대 중후반

    1930년대에 스페인에 일어난 중대한 사건이 뭐겠는가? 바로 스페인 내전이다

    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민전선 정부에 반발해 군부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스페인 내전

    전쟁은 군부의 승리로 마감됐고, 군부는 곧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프랑코 정권 체제를 수립했다

    전체주의를 모토로 삼는 파시즘 정부 눈에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카탈루냐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프랑코 정부는 곧 카탈루냐 지역에 강한 압박을 가하며 팀 바르셀로나에게도 많은 탄압을 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시기 같은 카탈루냐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에스파뇰은 파시스트의 탄압을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이 군 정권의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정체성 부정이었다

    에스파뇰은 프랑코 파시즘에 동화되어 정권에 순종했고, 그 덕택에 그들은 이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민족주의를 버리고 파시즘에 동화된 에스파뇰은 카탈루냐 지역 주민들의 엄청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FC 바르셀로나와 RCD 에스파뇰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이전에 필자가 쓴 바르샤의 역사에서도 적어두었지만, 양 팀 간의 확실한 서열 정리에는 꽤나 시간이 들었다

    오히려 초기 데르비 바르셀루니의 우세는 에스파뇰이 쥐고 있었다

    스페인 내전 이전까지는 양 팀의 전적이 6승 5무 5패로 비교적 동등했으나

    프랑코 정권이 수립된 직후 재개된 리가에서 에스파뇰은 무려 5승 1무를 기록하며 바르샤를 크게 따돌렸다

    최근까지 210여번의 맞대결을 치르는 동안 에스파뇰이 6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한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핍박 속에서도 강팀의 면모를 이어가던 바르샤였지만, 이상하게 에스파뇰과의 대결에서는 영 기를 펴지 못 했다

    반전을 꾀하던 바르샤에게 해결사가 되어준 것은 바르사의 레전드 골리였던 조세 노게스
     
    바르사에서 12시즌을 소화한 노게스는 은퇴 직후 감독으로 컴백해 부임 시즌 모든 더비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데르비 바르셀루니의 우세가 완벽하게 바르샤로 넘어온 결정적인 시기였다



    노게스 이후 FC 바르셀로나는 리누스 미헬스, 크루이프 등을 거치며 도저히 에스파뇰이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었다

    간단하게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예시들을 몇 가지만 적어보자면

    "에스파뇰이 캄프 누에서 9번째 승리를 가져가는데 걸린 시간은 8번째 승리로부터 무려 27년이 흐른 뒤였다"

    "86-87 시즌부터 03-04 시즌까지 에스파뇰은 캄프 누에서 전패를 당했다"

    "코파 델 레이에서 결승전을 포함해 FC 바르셀로나가 에스파뇰을 상대로 다음 라운드 진출(우승)한 확률은 70%를 상회한다"

    이 정도를 적을 수 있겠다. 양팀의 우열이 얼마나 확실하게 갈렸는지 알 수 있다



    이렇듯 우열 관계가 확실히 정리된 후에도 에스파뇰은 여전히 바르샤 서포터들에게 증오스러운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21세기 들어서 프랑코 정권 당시 친 파시즘 성향을 드러낸 것에 대해 사과를 했긴 하나

    당시 배신에 대한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기에 블라우그라나의 서포터들은 그들에게 관용을 배풀어줄 생각이 여전히 없다

    과거의 실책에 대한 사과와는 별개로 그들은 여전히 부정적인 스탠스로 바르사를 대하고 있다

    더비에서는 더티 플레이로 일관하고 평상시에는 친 마드리드적 성향을 아낌없이 뽐내니 팬들이 그들을 좋게 봐줄 리가 없을 터

    프랑코의 탄압에도 "MES QUE UN CLUB"을 모토로 세우며 카탈루냐의 정신과 자긍심을 이어간 바르샤와

    친 파시즘 성향으로 돌아서며 당장의 이익을 위해 카탈루냐를 배반한 에스파뇰

    아마 그들은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관계가 아닐까 필자는 생각한다






    <에스파뇰이 유일하게 사랑한 바르샤 선수>


    wp1918651-andres-iniesta-wallpapers.jpg 에스파뇰은 왜 이렇게 바르샤를 좆같이 대할까?




    2010년 12월 18일, 에스파뇰의 홈 구장에서 카탈루냐 더비가 열렸다

    13경기에서 12승 1무를 거두며 무패를 달리던 펩 바르샤와 같은 기간 8승 1무 4패를 거둔 에스파뇰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던 에스파뇰이었기에 치열한 더비가 기대됐으나, 경기는 바르샤의 5-1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경기의 주인공은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두 골을 기록한 비야였으나, 이 날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었으니

    다름 아닌 바르샤의 전임 캡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였다

    2010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연장 후반 결승골을 작렬한 이니에스타

    당시 이니에스타는 상의를 벗고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 셀레브레이션을 했다

    이니에스타의 친구이자 26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한 에스파뇰의 캡틴 다니 하르케를 위한 메시지였다

    "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 (다니 하르케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다)

    치열한 더비 라이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에게 추모를 표한 이니에스타에게 에스파뇰 서포터들이 감동했음은 당연지사

    이날 경기에서 에스파뇰 서포터들은 하르케의 등번호인 21번에 이니에스타의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만들어 그에게 감사를 전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양 팀의 관계를 처음으로 좁혀낸, 더비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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