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칙령 41조 속 "석도"는 어디일까? > 질문, 자료요청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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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제국 칙령 41조 속 "석도"는 어디일까?

    본문

    독도땅끝표지석.jpg 대한제국 칙령 41조 속

    독도의 동도 몽돌해안에 설치된 "땅끝표지석" - 외교부






    오늘(10월 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 



    하고 많은 날 중 왜 하필 오늘이 독도의 날일까요? 그건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를 통해 "석도"가 울도군(울릉군)에 속한다고 공식적으로 반포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칙령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한 건.

    제1조: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여 강원도에 부속하고 도감을 군수로 개정하여 관제 중에 편입하고 군등(郡等)은 5등으로 할 것

    제2조: 군청은 태하동으로 청하고, 구역은 울릉 전도와 죽도·석도를 관할한다.

    제3조: 개국 504년(1895년) 8월 16일자에 관보 중 관청의 사무란 내 울릉도 이하 19자를 삭제하며, 개국 505년(1896년) 칙령 제36호 제5조에 강원도 26군의 6자는 7자로 개정하고, 안협군 아래에 울도군 3자를 첨입한다.

    제4조: 경비는 오등군(다섯개의 계급)으로 마련하되, 현 상황을 들어보아 이익이 미비하여도 사무를 시작하여 섬에서 나오는 과세로 고선 마련한다.

    제5조: 미비한 조항들은 섬을 개척하면서 점차 마련해나간다.

    제6조: 본령은 반포한 날로부터 시행한다.

    광무 4년(1900년) 10월 25일

    어압 어새 봉

    의정부 의정 임시서리 찬정내부대신 이건하




    어새가 찍힌 것에서 알 수 있듯 고종황제가 직접 승인한 칙령이며 관할인 내부대신으로 하여금 공표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해당 칙령은 같은해 10월 27일 관보를 통해 정식으로 게재되었기에 국제법상 공표에도 부합합니다.




    이 칙령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무주지 선점"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식으로 관청을 두고, 관리를 파견하며 관할 구역으로 "석도"를 규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에 앞서 독도를 우리 행정구역에 편입했고 이를 공표했다는 증거가 되거든요. 물론 이 과정에서 일본은 어떤 항의도 없었기에 일본이 우릴 상대로 시전하는 "시마네현 편입 당시 한국의 반발 여부"를 우리가 역으로 꽃아넣을 수 있는 "카운터"가 되기도 하구요.



    그렇기에 일본 역시 칙령에 등장한 "석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습니다. 단. 이들은 이 "석도"의 위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죠.



    한 예로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다케시마" 항목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겠습니다.


    "그러나 ‘석도’가 오늘날의 다케시마(‘독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칙령에는 왜 ‘독도’라는 명칭이 사용되지 않은 것인가, 왜 ‘석도’라는 섬 이름이 사용되었는가, 또 한국측이 다케시마의 옛 명칭이라고 주장하는 ‘우산도’ 등의 명칭이 도대체 왜 사용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라고 말하죠.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건 딱 하나입니다.



    칙령 속 "석도(石島)"는 어디인가?




    라고 말이죠.





    우선 칙령 속 내용으로 돌아가봅시다.


    석도가 기술된 제 2조를 보면 울도군의 관할 구역은 다음과 같이 되어있습니다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라고 말이죠. 중요한건 울릉도가 아닌, "울릉전도"라는 표현이 쓰인 것입니다.


    왜 그런지는 오늘날 울릉군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캡처_울릉군확대.png 대한제국 칙령 41조 속

    울릉도 북서부 확대샷 -네이버 지도





    지도를 확대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울릉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여러 곳에 흩어져있습니다. 이들 모두를 하나하나 열거하는건 복잡하고 번거로우니 이를 통틀어 "울릉전도"라고 칭한거죠. 그리고 지도 동쪽에 죽도(대섬)이 있습니다. 




    자. 잠시 주목하세요. 죽도 표기를 제가 뭐라고 썼나요? 괄호를 치고 "대섬"이라고 말했죠? 대섬의 대는 "대나무"를 말합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댓섬"이라고도 말합니다. 결국 같은 말이지만요. 이점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말하자면 울릉도 근처에는 비교적 큰 섬이 3곳 있습니다. 하나는 독도, 다른 하나는 바로 위에 말한 죽도. 나머지 하나는 저기 지도에도 있는 "관음도"입니다. 



    저기가 바로 일본이, 그리고 이영훈이나 일부 친일파들이 주장하는 "석도"의 후보지입니다.



    영남대학교 독도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대구대학교 최장근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일본의 위키디피아와 시마네현 죽도연구소, 몇몇 대학 학자들이 "석도=관음도" 부분을 주장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한 이영훈 낙성대 연구소 소장이 "반일종족주의"에서 말한 것도 그런 내용이구요.


    이중 "반일종족주의"에 나온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영훈 교수는 여기에서 “석도는 1900년 중앙에서 내려온 대한제국의 관리가 임의로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며 "1910년대 총독부의 지방행정제도 개편과 육지측량을 맞아 관음도라 개명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소거법입니다. "독도는 석도일수가 없으니. 남은 관음도가 석도일 것이다"라는 주장이죠. 일단 칙령에 따로 표기한 "석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고. 죽도는 따로 표기되었으니 남은 관음도가 유일한 석도의 후보지라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선 왜 이들이 "독도"를 "석도"로 인정하지 않는지 알아봅시다. 일본 외무성이 위에서 썼던것처럼 칙령속에 석도에 대한 설명이 저걸로 끝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석도"를 특정하기에는 너무 짧습니다. 위도와 경도를 구체적으로 표기하지 않았기에 석도를 다른 곳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거죠. 물론 울릉도 전체의 섬을 통틀어 굳이 "울릉전도"고 표기하는 시점에서 굳이 모든 섬의 위치를 일일히 나열할 필요도 없고. 저건 어디까진 울도군 설치를 위한 관할구역을 설명하는 거라 당연한거지만 말이죠.



    부산광역시 관할 구역을 표기할때 영도군의 좌표를 쓰진 않는거랑 마찬가집니다. 만약 좌표를 특정하지 않아 인정할 수 없다면 위에서 표기한 "죽도" 역시 일본이 위치를 자기들 멋대로 특정할 수 있단 이야기나 다를거 없어집니다. 상당히 위험한 논리죠.



    그렇기에 우리는 당대에 주민들이 해당 섬들을 어떻게 불렀는지 보고 따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독도"는 뭐라고 불리었을까요?


    "독섬"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는 일본의 기록에도 나와있는 대목입니다. 지금이랑 똑같죠? 전라도 출신 이주민들이 많았던 당시 울릉도 인구 구조상, 이들의 방언인 "돌"의 해당 지역 방언 표기가 그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당대 주민들은 거길 "돌섬, 돌섬" 이렇게 부르고 있었단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일본은 당시 이 섬은 "량꼬도"로 주로 부르고 있었으며 이건 "리앙쿠르 록스", 다시 말해 서양의 측량 명칭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우리가 거문도를 "해밀턴섬"이라고 부른 꼴인데 정말 자기 영토라고 인식했다면 굳이 외국인이 붙인 명칭을 음차하지도 않고 그대로 불렀을까요?


    그밖에 "송도"와 "죽도"가 본래는 각각 독도와 울릉도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가 서양 측량 기록 따른답시고 뒤바뀌는 바람에 졸지에 대나무 한그루 안 자라는 독도가 일본어로 "댓섬"으로 불리는 꼬라지가 되었다는 것 등 여러 할말이 있지만 이건 다음 기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관음도"는 뭐라고 불리었을까요?



    이영훈 교수는 대체 뭘 보고 그런 주장을 해댔는지 모르겠지만, 1910년 이전에도 관음도는 "석도"로 불린 적이 없습니다. 그전의 지도를 보면 해당 지역은 "도항" 내지 "섬목"으로 표기되어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규원 관찰사가 "울릉도검찰일기"에서 쓴 표현이 있고, 또한 일본이 자기들 멋대로 울도군에 주재시킨 경찰관이 부산의 일본 영사관에 보낸 보고서에도 등장합니다. 한국인들이 "섬목"이라고 부르는 곳을 일본인들은 "관음도"라고 부른다고 말이죠. 울도군 주민들은 관음도를 "깍새섬"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댓섬"과 마찬가지로 남아있습니다. 현지 가보시면 아실 거에요. 어느쪽이든 "석도"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아예 본 섬의 연장으로 보고 "관음곶"으로 표기한 곳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래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관음도는 본섬과 불과 100m도 떨어져 있지 않거든요.


    그리고 바로 위 죽도와 비교해보면 비슷한 수준으로 수목이 자라고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길 굳이 "돌섬"으로 부를 바보가 있을까요?



    관음도_경북일보.jpg 대한제국 칙령 41조 속

    관음도 전경. 보다시피 울릉도에 바싹 붙어있어 <울릉전도>에 포함될 개연성을 나타내고 있다. - 경북일보




    자 정리해보겠습니다.



    두 섬이 있습니다.



    하나는 "돌/독섬"으로 불리었고. 나머지 하나는 "섬목", "도항" 또는 "깍새섬" 으로 불리었습니다.





    이중에 돌석"石"자를 쓸 "석도"는 어디일까요? 



    자 힌트를 드릴께요. "죽도"는 본래 "대/댓섬"으로 불리었습니다. 말 그대로 대나무 섬이라는 의미죠. 해당 지명은 한자 표기로 대나무 죽을 써서 죽도가 되었습니다.


    "불리는 말"과 "공문서 표기"가 다른 사례는 전혀 이상할거 없단 겁니다. 깍새섬(관음도) 역시 마찬가지고.



    자. 그럼 여러분이 대한제국 시절 저 칙령 41조를 반포해야 하는 입장에 선 관료라고 생각 했을때 다음 중 돌 석자를 쓸 섬은 어디가 해당할까요?






    네. 답 못 맞추면 바보죠. 바로 독도입니다.



    위에서 일본이 주장한거처럼 "소거법"으로 논리를 전개한다해도 "석도"는 절대 관음도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도 대놓고 정부 차원에서 관음도가 석도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거죠. 그렇다면 대놓고 "돌섬"이라 불린 섬도 "석도"가 아니라면 석도는 대체 어디인데? 라는 반문에는 묵묵부답이거나 더 말이 안되는 관음도를 억지로 들이내밀면서 말입니다.





    석도는 처음부터 독도의 한자 표기에 지나지 않았을뿐. 다른 섬이 아니었으니까요. 이런 사례는 독도 뿐만 아니라 울릉도의 다른 지명에서도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모시 조개가 많이 났던 모시개 마을은 모시 저자를 사용하여 "저동"이 되었습니다. 울릉도 가보신분들은 잘 알죠? 가장 인구가 많은 마을이니까요. 위의 댓섬 같이 지명을 한자로 음차해서 사용한건 딱히 "석도"에만 있던 표기가 아니란 이야기죠. 독도는 음을 살린 "석도"로 표기되었다가 본래 "독"의 발음을 살린 이름으로 고정되었을 뿐입니다.



    다른 지역에서도 전라도의 "상독도"와 "하독도" 같은 섬에서 "독도"와 "석도" 표기가 공존하는걸 알 수 있구요. 어차피 같은 "돌"이니까. 그리고 "독"의 표기가 해당 지역 이주민들에 의해 퍼졌다는것 역시 뒷받침 해줍니다. 오늘날에도 독도와 석도란 표기가 각각 공존하는 지역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돌섬은 흔하니까.



    여기에 울도군수 심홍택은 일본이 멋대로 독도를 편입했다고 주장했다는 보고서에서 "본군 관할 독도"라는 표현을 분명히 사용했습니다.


    상식적으로 군수가 자기 관할 지역이 어디인지도 모를까요?




    또한 이 보고서를 받아든 내부참정대신은 이렇게 답합니다. 


    "올라온 보고를 다 읽었고 독도가 일본 영지 운운한 설은 전적으로 근거 없는 주장에 속하나 독도의 형편과 일본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다시 조사하여 보고할 것"



    이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을사오적 중 한 사람인 박제순입니다.



    즉. 원조 친일파조차 독도가 일본령이라는 일본의 주장에는 콧방귀를 뀌었던 겁니다. 


    비록 이 시점에서 대한제국은 이미 을사늑약에 나라가 반쯤 넘어간 상태였기에 통감부가 실질적으로 주도권을 차지하고 있는지라 심흥택이 강원도 관찰사를 거치는 정상적인 보고서 외 직접 한양의 내부에도 따로 보고를 올려야 했을만큼(즉 정상적인 보고라인은 도중에 일본인들이 가로채거나 묵살할 우려가 있었단 이야기)나라 전체가 일본의 손아귀에 쥐어진 상태여서 사실상 저항할 방법이 없긴 했지만요. 


    바로 다음해는 고종 황제조차 강제로 퇴위당하고 이미 한차례 군축을 거쳤던 한줌 남은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판에. 하물며 일개 변방지역 군수가 뭘 할 수 있었을까요.




    그래도 한가지는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도 독도를 일본령이라고 주장하는 놈이 있다면 진지하게 말해 "친일파보다도 못한 새끼"이고. "매국노보다 더한 매국노"라고 당당하게 부를 수 있다는거죠. 그건 팩트니까요.




    그리고 그런 놈들의 주장은 표현의 자유로 하게는 내버려 둘 순 있되, 진지하게 들을 값어치는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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