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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의 여자들

    본문






    "모두가 실업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으며


    히틀러만이 독일을 대공황의 불행에서 구원해주리라 진심으로 믿었다"


    . . .


    "군중속에서 그와 눈이 마주쳤다. 


    찰나의 순간에 그의 눈이 나를 꿰뚫는 것 같았고


    우리는 그것만으로 깊은 유대감을 생성했다."


    . . .


    "그는 지금 여기에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는,


    오로지 독일 국민의 이익만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 독일의 심리학자 유타 뤼디거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아돌프 히틀러




    그는 금연, 금주, 채식주의자 등의 엄격한 절제력의 소유자로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그도 남자인지라 이성에 대한 호감은 절제하지 못했으니


    이번 글에선 그의 여자들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다
















    1. 근친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겔리 라우발




    무려 17살의 젊은 그녀는 히틀러의 조카였다


    히틀러는 순진한 겔리 라우발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동거까지 하게 되는 사이로 발전한다


    히틀러와 겔리는 나이 차이가 20살 가까이 차이났지만 히틀러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물론 미성년자와의 교제를 당연시하던 그 당시의 분위기도 그러했다


    히틀러는 겔리를 맹목적으로 사랑했고 그녀를 향한 마음은 곧 무시무시한 집착으로 잠식되어 갔다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겔리 라우발)






    하지만 겔리 라우발은 얼마 안 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겔리는 자신의 친구에게 그는 자신에게 상상도 못할 짓을 시키곤 한다 라며 털어놓았었다


    온갖 루머가 난무했는데 특히 히틀러의 폭행이나 성적학대가 주를 이루었다


    현재도 그녀가 자살한 이유는 정확히 파악된 바가 없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나치당 내부에서 입단속을 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히틀러의 채식에 대한 강박은 이날을 기점으로 생겼다는 추측이 있다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겔리와 히틀러. 그 둘의 사이는 워낙 복잡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였다)





    독일 언론매체에선 히틀러를 성도착증 환자라고 비난했고 그는 크게 상심하고 만다


    나치당은 히틀러가 겔리를 따라 자살할거라 우려했고, 그는 실제로 우울해 했었기에 그런 소문은 금세 퍼지게 되었다


    나치당의 리더를 잃을까봐 걱정한 추종자들은 즉시 대책을 강구했는데


    히틀러의 전속 사진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이 자신의 여비서 한명을 소개해주었다
















    2. 에바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에바 브라운





    겔리를 닮은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의 여자로서 딱 알맞았다


    그녀는 이미 세상경험이 풍부했기에 적임자로서 충분했기 때문이다


    에바가 처음 히틀러를 만났을 때 겔리처럼 역시 미성년자였다


    소녀 에바는 나치의 선동에 철저히 세뇌되어 갔으며 나중엔 히틀러와 사귀며 그를 맹렬히 따르게 된다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바 브라운은 점점 홀대를 받게 되었다


    대내외적으로 그녀에 대한 단속은 심해졌고 추억을 쌓을 수도 없었다


    히틀러는 나치당의 수장이었기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히틀러는 여성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며 자칫 열애설이 터지면 곤란했다


    에바는 점점 외로움에 지쳐갔다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 히틀러가 여성들의 표를 받으려고 사생활을 보여주는 의도로 찍은 사진 )





    히틀러가 그녀의 전부였기에 에바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에바는 겔리가 그러했듯이 권총자살을 시도한다


    히틀러는 또 다시 같은 수단으로 애인을 잃을 뻔한 것이다









    "겔리 라우발의 죽음은 혼탁한 정치 상황에 지친 히틀러의 마지막 안식처를 앗아간 사건이며

    그로 인해 그는 더 이상 이성적 사랑을 할 수 없는 불구자가 되었다."


    . . .


    "에바 브라운은 그의 부속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마도 라우발이 히틀러 옆에 더 오래 있었다면 히틀러의 잔혹함은 진화하지 않고 멈추었을 것이며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나치돌격대장 한스 프랑크









    에바는 총상을 입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히틀러의 관심을 돌리려는 일종의 자살시위였고


    히틀러는 결국 에바의 소원을 들어주어 그녀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을 내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고 이것은 에바를 더욱 미치게 했다


    나중에 에바는 수면제를 먹어서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그녀의 두 번째 자살시도였다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에바와의 다정한 한 컷)





    히틀러는 에바의 계속되는 자살시도에 항복했다


    공식적인 자리에도 초대했고 측근과 에바를 대동해서 알프스 산장으로 떠나 휴가를 즐겼으며


    기록영상을 촬영하는 등 에바와 히틀러는 전보다 많은 추억들을 남겼다


    그 촬영기사 역할은 히틀러에게 촉망받는 건축가이자 전범자인 알베르트 슈페어가 맡았었다










    " 그녀는 히틀러의 들러리였다. 그녀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자 사치로서 그것을 채우려고 했다."


    - 알베르트 슈페어
















    3. 시작의 끝








    2차세계대전 말, 나치독일의 생명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히틀러는 연합군 폭격기들을 피해 측근들과 베를린 지하에 있는 벙커에서 생활했다


    에바 또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나치독일이 시시각각 폐허로 변해가고 있을 때, 히틀러는 미루었던 일을 진행하는데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image.png 히틀러의 여자들




    그것은 바로 결혼이었다


    1945년 4월 29일,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해오자 히틀러는 다급했다


    그와 에바는 초라한 지하벙커에서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튿 날인 1945년 4월 30일 둘은 권총으로 동반자살을 하게 된다


    신혼생활을 벙커에서 보내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으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NGC 2차세계대전: 히틀러의 유럽침략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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