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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PT] 로드리, "축구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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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심
    2024-09-07 15:42 23 0 0 0

    본문

    b85b2af1a7a159547b1f193c599d79e3_1725691320_7744.png 

    나는 항상 시티에서 내 동료들에게 말한다.
    나는 영국식 영어가 아닌 미국식 영어로 말한다고. 
    걔들은 나를 정말 많이 놀린다. ㅎㅎ
    '힙하다' 라는 것 때문인지 옷입는 걸로 자주 놀린다.
    가끔은 내가 말하는 방식 때문에 놀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다. 
    사실 나는 맨체스터나 런던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 
    미국 코네티컷 주의 숲 속에서 배웠다. 
    그래서인지 난 미국식 영어가 편하다.

    ‘아이노우~, 매앤~. 헤이요~. 하우유두잉?, 브로?’ (대충 이런 식으로..)

    알다시피, 우리 가족에게 교육은 정말 중요했다. 
    아버지는 내가 1년 동안 미국 고등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지내길 원하셨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내 꿈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내가 14살이 됐을 때, 코네티컷 숲 속 한가운데에 있는 여름 캠프에 갔다.
    ‘코네티컷’이라는 이름 자체도 마드리드에서 온 아이에게는 엄청 이상하게 들렸다. 
    근데 도착했을 때 마치 할리우드 영화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호숫가 캠프에서 나무로 만든 카누를 타고, 나무를 타고 오르며, 텐트에서 자고, 
    나무 막대로 불을 붙이는 그런 영화 있잖아? 진짜 그랬다. 
    마시멜로와 비스킷을 불에 구워 먹는 것도 했다.. 초콜릿이랑 같이 ㅎㅎ

    스모어! 정말 끝내줬다.

    핸드폰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었다. 
    새로운 나라에서 혼자 친구를 사귀려고 했다.
     
    ‘안녕, 나는 로드리고야. 나는 마드리드에서 왔어.’

    나는 항상 서툰 영어로 말했다. 

    ‘얘들아, 우리 축구 언제 할거야?’

    ‘그래, 로드리고. 좀 이따가 할 거야. 우린 돼지 가죽(럭비공)을 던질 거야.’

    난 생각했다. ‘돼지 가죽??’

    ‘브로, NFL 같은 거야.’

    솔직히 말해서, 꽤 재밌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말했다. 

    ‘얘들아, 나 축구(soccer)하고 싶어.’

    ‘사커? 사커는 안해, 매앤~.’”

    더 안 좋았던 건 내가 2010년 월드컵이 시작되던 시기에 거기 있었다는 거다. 
    인터넷도 확인할 수 없어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메인 오두막 사무실에 작은 컴퓨터가 있었는데, 
    매일같이 캠프 직원들에게 누가 이겼는지 물어봤다. 
    스페인이 첫 경기에서 스위스에게 졌다고 했을 때, 그들이 나를 놀리는 줄 알았다.

    ‘스위스? 진짜로요?? 제대로 구글링 한 거 맞아요???’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은 점점 더 잘하기 시작했다. 
    토너먼트에서 계속 이기고, 독일과의 준결승이 다가왔을 때 난 미칠 지경이었다.
    아마도 그때 카누 여행 중이었을 거다. 
    계속 직원에게 ‘제발, 제발 점수 좀 확인해줘요’라고 부탁했었다.

    마침내 우리가 오두막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말해줬다.

    ‘스페인이 결승에 진출했어.’

    난 그때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동시에 집이랑 가까이 있는 기분이었다.

    결승전을 보기 위해 직원에게 그의 컴퓨터로 보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그가 빌려준 컴퓨터는 10인치 정도 되는 화면이었다. 
    당신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 작은 노트북 있잖아?
    딱 그거였다.  정말 작았다. 
    하지만 난 생각했다. 

    ‘아름답다. 상관없어. 그냥 보게만 해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숲 한가운데 있었으면서도 합법적이지 않은 스트리밍 사이트를 찾아서 결승전을 봤다. 
    미국인들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니에스타가 골을 넣었을 때 나는 정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밖으로 뛰쳐나가 호숫가를 전속력으로 달렸다.

    ‘바아아아모오오오스!!!! 아아아아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바 에스파냐!’

    미국인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저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들은 나를 보면서 ’잠깐, 스페인 애가 울고 있는 거야? 그 사커 때문에?’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들은 내게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를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진짜 미쳤었을지도 모르고…

    나는 평생을 두 세계 사이에서 살아왔다. 하나는 축구, 다른 하나는 ‘진짜 세상.’

    가끔 동료들이 나를 ‘평범’하다고 놀린다. 
    재밌는 건, 만약 내 여자친구나 심지어 우리 엄마에게 물어본다면, 
    그들은 내가 정상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고 말할 거다. 
    축구에 관해서는, 나는 완전 중독자다. 
    내가 ‘평범’이라면, 그건 아마도 소셜 미디어나 400파운드짜리 운동화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페라리가 타고 싶으니 축구 선수가 되고싶어!’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다. 
    내가 존경하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보여준 플레이가 나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했다. 
    다섯 살 때였던 게 기억난다. 우리 동네에 공동 수영장이 있었고, 작은 정원도 있었다. 
    여름이면 축구, 수영, 축구, 수영. 점심 먹으러 집에 갔다가 다시 수영장...

    열 살이 됐을 때, 경기에서 잘 못하면 하루 종일 부모님과 대화할 수가 없었다. 
    너무 속상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얘 왜 이러는 거야? 그냥 게임일 뿐이잖아?’ 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거의 약물 같은 거였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하나의 약속을 했다. 
    우리가 이걸 말로 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해된’ 약속이었다. 
    내가 축구의 꿈을 추구하고 싶다면, 대학에도 가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17살 때, 나는 마드리드를 떠나 비야레알로 이사 갔고, Jaume I 대학에도 등록했다.
    첫 해에는 비야레알 아카데미의 기숙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18살이 되면 ‘늙었다’고 간주되어, 스스로 아파트를 찾아야 했다.

    엄마가 아이디어를 줬다.
    ‘왜 그냥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지 않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image.png [TPT] 로드리, "축구에 감사한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것 같다. 
    큰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공용 세탁실, 샤워실, 카페테리아가 있고 문, 문, 문이 나란히 있다.
    이웃들이 옆에 쭉 붙어 있다. 나는 나만의 작은 방에 나무 침대, 나무 책상을 두고 살았다. 
    TV나 플레이스테이션도 없었고, 그냥 노트북만 있었다. 
    아침에는 비야레알에서 훈련을 하고, 오후에는 수업에 가고, 밤이 되면….

    밤은 재미있었다. 
    왜냐하면, 당연히 그곳은 대학이니까.. 
    금요일 밤이면 모두 클럽에 가려고 했다. 
    근데 먼저, 미국식으로 말하면 ‘프리’를 했다. 
    작은 방에 모여서 음악을 틀고 맥주를 마시면서 한 방에 20명이 모여 있는 거다. 
    침대, 바닥, 어디든 앉아있고, 나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행동했다. 
    다들 내가 축구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탄산수 들고 같이 있다가 시간이 되면 그냥 사라졌다.

    결국 누군가가 ’로드리고, 너 왜 항상 우리랑 같이 안 가? 좀 와라, 이 친구야.’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사실 나 축구 선수야. 아침에 훈련이 있어.’

    그러니까, ‘지루해~~~ 이 친구야, 노잼~~.’

    완전 놀렸었다. ㅎㅎ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2군에서 훈련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차도 없었다. 
    학생 기숙사는 비야레알 훈련장까지 차로 15분 거리였는데, 매일 택시를 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트램역까지 가서, 트램에 자전거를 싣고, 남은 거리는 자전거로 갔다. 
    결국 면허를 따고 아버지한테 말했다. 

    ‘3,000유로가 있으니까 차 좀 찾아주세요.’

    다음 날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좋은 차 하나 찾았어. 어떤 할머니가 파는 차인데, 4,000유로를 원하지만 컴퓨터가 달려 있어.’

    나는 ’와우, 컴퓨터? 거래 성사!’라고 생각했다.

    차를 가져오셨는데, 오펠 코르사였다. 차에 타보니까 ‘컴퓨터’ 화면이 8센티미터쯤 됐다. 
    화면을 탭하면 라디오가 켜지는 기능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엄청 감탄했다. 
    매일 훈련 갈 때 그 차를 몰고 다녔는데, 완전 자랑스러웠다. 
    팀 동료들이 나를 놀렸지만, 신경 안 썼다. 난 그 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다음 해에 라리가 첫 경기를 뛰었고, 내 학교 친구들은 좀 충격받았던 것 같다. 
    그들이 TV로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복도 끝에서 사는 그 친구가 화면에 나온 거다. 
    자기들 회계학 수업에서 봤던 그 친구가 경기장에서 No. 6을 달고 뛰고 있었던거다..

    그들은 그게 진짜 나라는 걸 믿지 못했다.

    “잠깐, 진짜 걔 맞아?”

    “구글 검색해봐, 어서 구글링 해봐.”

    “아니야, 그 로드리고가 아닐 거야. 로드리고라는 이름은 많잖아. 걔 아닐 거야.”

    축구 유니폼을 입고 TV에 나오면 좀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아마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몇몇은 확신했다.

    "아니야, 걔 절대 아니야.”

    그러다 점점 경기에 더 많이 출전하게 되면서 그게 정말 나라는 걸 알게 됐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야, 도대체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어젯밤에 바르셀로나랑 경기했잖아!”


    image.png [TPT] 로드리, "축구에 감사한다"

     
    그 시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학에 돌아가면 내 뇌가 자동으로 다른 세계로 전환되는 것 같았다.
    학교는 축구의 압박감을 잊게 해줬다. 
    또 하나 멋진 점은, 그 기숙사에서 내 여자 친구를 만났다는 거다. 
    그녀는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내 축구에 대한 스트레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하... 셀타 비고와 비긴 경기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내 발을 땅에 붙여놨다.

    “진정해, 응? 진정해.. 그거 그냥 축구야.”

    그리고 내 선생님들 눈에는 내가 그냥 “또 하나의 학생”이었다. 
    스페인에서는 대학은 그냥 대학이다. 당신은 공부하러 거기에 가는 거다. 
    그래서 작은 방에서 내 노트북과 함께 있을 때, 난 완전히 몰두해서 다른 모든 걸 잊곤 했다.

    어느 날,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놨었다. 
    이후, 잠시 쉬면서 확인해보니, 문자 메시지가 20개, 왓츠앱 메시지가 50개, 부재중 전화가 10통이나 와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오 마이 갓.. 누가 죽었나? 무슨 일이야?

    팀 동료가 나에게 전화를 걸었왔다.

    “로드리, 너 어디야?”

    “어디라니? 나 여기 있어. 대학이지.”

    “감독님이 널 찾고 있어. 모두가 널 찾고 있어.”

    “무슨 소리야?”

    “발렌시아랑 경기해. 우리 다 버스에 있어.”

    나는 그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에이, 그 경기 내일이잖아……”

    오 마이 갓.... 아니... 
    어느날 학교에 등교했는데 그날이 시험치는 날이란 걸 잊고 있던 상황이랄까? 
    그게 나한테 실제로 일어난 거다. 
    근데 학교가 아니라, 라 리가였다.

    “알겠어, 일단 버스 그냥 출발해. 호텔에서 만나.”

    그날 정말 빠르게 옷을 입고 차로 달려가서, 내 오펠을 타고 제임스 본드처럼 거리를 질주했다. 호텔이 발렌시아에서 한 시간 거리였는데,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팀 회의가 시작됐고,
    난는 마치 “숙제 하는 거 까먹었다..”라는 표정을 하고 들어갔다.

    하하하.. 축구에서도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혼쭐이 났지만, 그럴만 했다. 
    그건 나에게 큰 교훈이었다.
    나의 두 세계를 더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여정에서 모든 단계마다, 나는 실패를 통해 배웠고, 새로운 것을 추가했다. 
    또 하나의 퍼즐 조각.. 
    비야레알에서, 나는 단순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프로가 되는 법을 배웠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돌아가 한 시즌을 보냈을 때, 나는 진정한 경쟁이 무엇인지 배웠다. 
    비야 레알에 있을 때 나는 발밑 기술이 뛰어났지만, 여전히 조금은 부드러운 선수였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아래에서 나는 경기장에서 ‘나쁜 놈’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거칠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상대 팀을 90분 동안 괴롭히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것 또한 중요한 배움이었다.

    그 다음 여름에 시티로 이적할 기회를 얻었을 때, 나에게는 꿈 같은 일이었다. 
    이적을 결정하기 전에 세르히오 부스케츠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펩? 그는 너를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줄 거야. 
    하지만 계속, 계속, 계속해서 널 밀어 붙일거고, 너에게 끝이란 절대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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