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장문) 마드리드, 음바페, 그리고 "프로젝트 음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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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https://media.gettyimages.com/id/1190237365/photo/real-madrid-v-paris-saint-germain-group-a-uefa-champions-league.jpg?s=2048x2048&w=gi&k=20&c=hTSz24oXPs7snoY62cSvtkfcHQjo2jpCkyAfrpU8kIg=
모나코의 아카이브 깊은 곳에는 어린 킬리안 음바페 앉아서 수업을 듣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습니다.
음바페의 어린 시절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장난기 넘치고, 재기발랄한 모습들로 가득합니다.
아카이브의 또 다른 클립에는 미국의 치어리더처럼 트램펄린 위에 폴짝폴짝 뛰며 모나코의 철자를 하나씩 적는 귀여운 모습도 담겨있습니다.
아이 같은 음바페의 모습도 존재하지만, 음바페에게 프로 같은 진중함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린 음바페는 부모님과 함께 더 넓고 더 큰 계획을 위해 준비해 왔으며, 일명 "프로젝트 음바페"는 모나코의 아카이브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강의실 영상에서 음바페는 다양한 언어를 배우며, 특히 스페인어를 집중해서 배웁니다.
인터뷰에서 음바페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것이 제게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올여름, 그 아이가 배운 스페인어는 시간이 지나 큰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파리 생제르망에서 계약을 마친 25살의 청년 음바페는 스페인의 거함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이 거의 확실시되어 보입니다.
어린 음바페의 침실 벽에 붙어있던 그의 영웅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모습을 바라보며 키워왔던 꿈이 실현되는 순간입니다.
더 나아가, 축구선수로서 음바페에게 가장 큰 트로피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거머쥘 수 있는 이적이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은 "역대 최고"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이적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현 FIFA의 세계 축구 개발 책임자이자 전 아스날의 감독은 프랑스인 아르센 벵거 감독은 음바페를 향해 "그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지난 10년간 환상적인 모습을 벌써 보여주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그의 경력에서 지금 이 순간은 그의 신체적인 능력의 정점인 순간입니다. 그에게 제한은 없습니다. 그는 그가 가진 것의 90%를 보여주어도, 여전히 세계 최고일 것입니다."라고 음바페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음바페와 그의 가족들은 언제나 세계의 정상을 향해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음바페의 소꿉친구인 라얀 비양가는 음바페가 언제나 "학교, 축구, 집"에서 생활했다고 말합니다.
음바페의 고향은 파리의 교외 지역이었습니다. 프랑스가 1998년 월드컵을 개최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봉디라고 불리는 지역에서 음바페가 태어났습니다.
98년 월드컵에 프랑스의 슈퍼스타들이 즐비했으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국가대표의 많은 선수들도 이즈음에 태어났습니다.
201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한 뒤, 음바페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바로 이곳 봉디입니다.
당시의 영상에서 음바페는 "이곳이 제가 나고 자란 곳입니다.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합니다.
음바페의 아버지 윌프레드는 축구 선수 출신 감독입니다. 음바페의 어머니는 핸드볼 선수였습니다. 스포츠의 재능을 지닌 부모의 눈에 음바페가 자기보다 두 배는 더 큰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찾는 모습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 불일치는 계획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음바페는 AS 봉디에 소속되었고 곧바로 다른 선수들을 앞질러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최고와 경쟁하고 싶어 했습니다.
음바페의 소꿉친구 비양가는 "음바페가 최고와 경쟁하려는 건 언제나 그 자신만의 엄격한 룰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았고, 코치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언제나 최고의 선수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스날의 수비수 윌리엄 살리바를 포함해 AS 본디의 유망주들 중 두 자릿수가 넘는 선수들이 프로 레벨에서 뛰는 걸 본다면, 당시 그 행동이 얼마나 위대하고 효과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음바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10대의 음바페가 호날두의 사진을 붙여두고, 또 다른 레알 마드리드의 슈퍼스타이자 그의 조국 프랑스의 영웅인 지네딘 지단의 플레이를 비디오로 돌려보는 동안, 음바페의 세 번째 롤모델, 바로 그의 입양된 형제 지레스 켐보 에코코,는 그의 곁에 머무는 영웅이었습니다.
에코코는 9살 때 음바페의 부모님에게 입양되었고, 프랑스 연방 클레르퐁텐 국립 아카데미에서 뛰다가 리그앙의 렌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에코코는 음바페보다 10살 이상 더 나이가 많았고, 그보다 더 큰 영향력을 음바페에게 주었습니다.
6살 때, 음바페가 학교에서 프랑스 국가를 배우면서, 그는 선생님께 "저는 언젠가 프랑스 대표로 월드컵에 나갈 거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음바페가 큰일을 해낼 사람이라고 믿었던 것은 그의 가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이키는 그가 겨우 10살 무렵이었을 때, 무료로 축구화를 주었고, 그로부터 약 6년이 시간이 지나, 그는 모나코에서 프로 데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사건 사이의 시간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앨런 모메지는 클레르퐁텐에서 음바페와 같은 반 친구였습니다.
앨런 모메지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합니다.
"음바페는 초창기에,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음바페를 보면서 "우와!"라고 감탄한 적도 없었고요."
"당시 그는 윙에서 뛰었고, 꽤 자주 삐졌었습니다. 아마 음바페도 클레르퐁텐에서 그가 최고 그룹에 속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할 거에요."
"하지만, 첫해가 끝나고 그는 급성장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느꼈습니다. 그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요."
그 재능으로 인해 음바페는 14살이 되던 해인 2013년 7월에 모나코에 스카우트되었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파리의 외곽에서 부유한 지역으로 가는 것은, 때때로 사람을 안주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봉디에서 온 소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그가 모나코에 도착한 직후, 음바페와 그의 동료들은 자신들의 이미지를 담은 잡지 표지를 디자인하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대부분 스포츠 잡지를 선택했을 테고, 또 파리의 주간지를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음바페는 "마에스트로. 마스터."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국제적인 명성의 타임지를 디자인해 제출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그는 프랑스의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됩니다. 펠레와 함께 월드컵 결승전에서 득점한 두 번째 십대 선수로서 "프로젝트 음바페"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숙제처럼 그의 얼굴이 타임지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음바페는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아이들은 야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야망이 실현되는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엄청난 재능은 엄청난 부를 동반합니다.
2017년 여름, 음바페를 11살부터 눈여겨보던 레알 마드리드는 모나코에게 고작 18살이었던 음바페에게 1억 8천만 유로(한화 약 2,684억 원)의 제의를 합니다.
당시 모나코는 음바페에게 "잘 들어, 우리가 거절하기엔 너무 좋은 제안이야. 우리는 너를 레알 마드리드에 팔기로 결정했어."라고 전했습니다.
음바페는 "우와, 와, 음,... 그 누구도 제게 뭘 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제 미래를 결정하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파리 생제르망.
그리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10대 선수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드리드는 음바페를 손에 넣기 위해 7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 음바페는 약 1억 5천만 유로(한화 약 2,236억 원)의 계약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거대하지만 이뤄진 꿈, 엄청난 재능과 부, 제한이 없는 잠재 능력.
그리고 음바페는 그 모든 것을 담을만한 거대한 그릇입니다.
수많은 언론은 음바페를 파리 생제르망의 전술, 운영, 그리고 이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종종 그러한 부정적인 헤드라인은 음바페 가족, 특히 어머니와 그의 대리인에 대한 불만을 수반했습니다.
전 파리 생제르망의 퍼포먼스 디렉터 마틴 벅화이트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음바페와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에서 자아를 주제로 이야기를 썼고, 그 안에 음바페의 가족은 음바페가 자신의 가진 자아를 주체하지 못할 때면 개입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음바페의 어머니는 음바페가 반 친구의 외모를 놀렸다는 소식을 듣고 음바페가 일주일 동안 학교에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가게 하기도 했습니다.
벅화이트는 "자아는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자아를 제어하는 데에 더 큰 초점을 두어야합니다. 음바페의 자아의 핸들을 잡고 있는 것은 음바페이지만,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필요하다면 그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주었습니다."
음바페의 자아를 누가 제어하든 간에, 음바페의 재능은 경기장 위에서 누구도 제어할 수 없어 보입니다.
2023년 12월 음바페의 생일까지, 음바페는 구단과 국가를 위해 306골을 득점했는데, 이는 그의 어린 시절 영웅인 호날두가 같은 나이에 기록한 160골의 거의 두 배이며, 또한 리오넬 메시가 기록한 279골보다도 더 많은 득점입니다.
2024년 유로를 앞두고 있는 음바페는 프랑스의 역대 득점자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46번의 득점을 올린 음바페는 분명히 언젠가 티에리 앙리(51득점)과 올리비에 지루(57득점)를 넘어설 것 입니다.
음바페는 영향력도 갖춘 남자입니다.
그는 어린 나이지만 벌써 프랑스 국대 대표팀의 주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주장 완장을 킬리안에게 주기로 한 것이 쉬운 결정이었나요?"
데샹은 답했습니다. "그럼요."
음바페는 수많은 영광과 명예를 손에 넣었지만, 아직 "프로젝트 음바페"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파리 생제르망의 영원한 염원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결국 음바페가 떠나기까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와 같은 개인 트로피 역시 아직 그의 트로피 진열장에 놓이지 못했습니다.
음바페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어떤 훌륭한 모습을 보여줄지,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하게 될지, 개인 수상을 할 수 있을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반열에 오르게 될지 모르지만, "프로젝트 음바페"는 미완성이고, 우리 그 프로젝트를 즐길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의역 다수
오역, 오탈자, 어색한 문장 알려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수정하겠습니다.
https://www.bbc.com/sport/football/articles/cv22kx63y9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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