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애슬레틱] 리버풀의 흐라번베르흐 영입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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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라이언 흐라번베르흐 영입 막전막후
인내, 선수 가족과의 미팅, 그리고 클롭
이적시장 마감 당일 오전, 여자친구인 신디 페로티와 함께 리버풀 훈련장을 찾은 흐라번베르흐는 환영 차 본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익숙한 얼굴 둘을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은 바로 네덜란드 대표팀 동료인 반다이크와 각포로, 두 선수는 훈련장 계단을 달려 내려와 바빴던 올 여름 구단의 네 번째 영입생인 흐라번베르흐를 반겨주었다.
이후 흐라번베르흐는 "이제야 네덜란드에서 좋은 선수 한 명 왔구만!"이라는 레프트백 로버트슨의 농담과 함께, 다른 선수들과도 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클롭 감독의 경우에는, 본인 사무실로 들어오는 흐라번베르흐를 따뜻한 포옹으로 반갑게 맞이해준 뒤 다음과 같은 말을 선수에게 전했다. "제일 안좋은 부분부터 말해주자면, 여긴 뮌헨만큼 날씨가 좋진 않아. 그런데, 그걸 제외한 나머지는 정말 최고지. 여긴 엄청난 구단이야, 우린 최대한 널 도와줄거고."
한편, 클롭 감독과의 대면 이후 이어진 구단 자체 미디어 콘텐츠 촬영 단계에서 흐라번베르흐는 분데스리가 선발 출전 경기가 고작 세 차례에 불과했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던 바이에른 뮌헨 (이하 '바이언')에서의 한 시즌을 뒤로 하고, 새 구단에서 "새 출발"을 해내겠다는 각오를 불태워보였다. "드디어, 여기 오게 됐네요." 환한 미소와 함께 흐라번베르흐가 카메라 앞에서 한 말이다.
이번 이적 과정에서, 리버풀과 선수 양쪽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였다. 흐라번베르흐를 향한 리버풀의 오랜 기다림은 결국 34m파운드의 이적료에 구단간 합의가 이뤄지고, 선수 또한 구단이 내민 5년짜리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성공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맥알리스터, 소보슬러이, 엔도의 영입에 이은 흐라번베르흐의 영입은, 리버풀에게 치열했던 중원 리빌딩 작업에 종지부를 찍는 영입이라고 할 수 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30살의 엔도를 영입한 것이 그동안 구단이 주로 채택해오던 영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난 결정이었다면, 이번 흐라번베르흐의 영입으로 그러한 기존의 영입 기조는 다시 정상 가동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프로 데뷔 구단이었던 아약스 소속이었을 당시 엘리트 레벨의 경험을 야무지게 쌓았던 흐라번베르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포텐까지도 겸비한 재능이다. 여기에 선수가 가지고 있는 멀티성과, 선수가 바이언에서의 시간 이후 새로운 환경에서 증명해야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까지 생각해보면, 이번 영입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흐라번베르흐의 영입은 어떻게 이렇게 성사될 수 있었던 걸까?
"친구, 이 선수는 그냥 우리 거야." 3월, 현역 시절 리버풀에서 레프트백으로 뛰었었던 호세 엔리케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리버풀이 흐라번베르흐에게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꺼낸 말이다. "얘도 라이올라 사단이라서, 나랑 에이전트가 똑같걸랑. 얼마 전엔 런던에서 미팅도 했었다니까. 얜 우리 선수야."
엔리케 말처럼 간단한 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리버풀이 지난 시즌 선수의 에이전트인 라파엘라 피멘타와 긍정적인 대화를 나눴었고, 올해 초 호세 포르테스 로드리게스가 선수의 대리인 신분을 이어받고 나서도 이러한 긍정적인 대화가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 4월에는 리버풀의 수석 스카우트, 배리 헌터 또한 선수의 아버지인 라이언 시니어를 만나러 네덜란드 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본인이 들었던 말에 힘을 얻은 상태로 잉글랜드에 복귀하기도 했었다.
경기 기용에 있어 선택을 받지 못하고 선수단의 전력 외 자원이 되어버린 상황에 지쳐버린 흐라번베르흐는 만약 구단간 합의가 이뤄진다면 리버풀로 이적할 수 있는 기회를 덥석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나겔스만 감독과 투헬 감독 체제에서 선수의 출전 시간은 계속 부족한 상태였지만 '이 선수는 판매 대상이 아니라'는 바이언 측의 입장이 완고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단의 입장은 이적시장이 닫히기 72시간 전까지도 변하지 않았고, 그때가 되어서야 바이언은 뒤늦게 언해피한 선수를 잔류시키는 것 대신 그 선수를 현금화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흐라번베르흐에 대해서는, 맨유 역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시 맨유는 피오렌티나 소속 선수였던 소피앙 암라바트를 임대 영입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던 상황이었다. 어찌됐든 흐라번베르흐의 마음은 안필드를 향해있었고, 리버풀은 선수 영입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선수에게 가장 주된 문제는 우리가 4-2-3-1 시스템에서 8번 미드필더를 잘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흐라번베르흐의 바이언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이유를 투헬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고, 공격적인 선수에요. 라이언은 정말 나이스하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헌신적인 선수였죠. 하지만 본인의 상황에 만족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리버풀에서 4-3-3 시스템 상 8번 미드필더로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은 거고요. 라이언은 한동안 이적을 원했었어요."
리버풀은 지난 달 엔도를 영입하고 나서부터는 전문 홀딩 미드필더를 추가로 구할 생각이 없었다. 클롭 감독은 맥알리스터, 티아고, 바이체티치처럼 6번 롤을 맡아줄 후보군이 수중에 있었고, 이들의 숫자가 괜찮다고 느꼈다.
대신 클롭 감독은 "멀티형" 선수의 영입을 원했고, 흐라번베르흐를 이상적인 영입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흐라번베르흐는 유사시 아랫선에서도 뛰어줄 수 있지만, 그보다 앞선에 배치되었을 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되는 선수다.
"토마스 투헬이 말했던 것 있죠, 선수가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포지션을 보면 그쪽 (바이언)은 그런 역할을 전술상 잘 사용하지 않잖아요. 우리는 그걸 쓰고요, 좋은 일이죠." 클롭 감독의 말이다. "대단히 재능있는 선수입니다. 패스길도 잘 보고, 박스 투 박스로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도 있는데, 우리 선수단에 잘 들어맞는 부분이에요."
리버풀은 아약스 유소년 레벨에 몸담고 있었을 때부터 흐라번베르흐를 폭넓게 스카우트해왔는데, 아약스 시절 에너지와 투지 넘치는 플레이가 돋보였던 흐라번베르흐는 2018년, 16세 130일의 나이에 텐하흐 감독에게 리그 데뷔전의 기회를 부여받으며 세이도르프의 종전 기록을 경신해 구단 최연소 에레디비시 출전 기록을 본인의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 아약스에서, 흐라번베르흐는 3년 전 13.5m파운드의 이적료에 울브스로 소속팀을 옮겼던 前 리버풀 선수 키야나 후버와 같은 연령대 그룹에 속해있었다.
후버는 리버풀 유니폼을 줌으로써 2020년 '붉은 유니폼의 흐라번베르흐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헬스장 자전거에 걸터앉아있는 사진'을 세상 밖에 나오게 한 장본인으로, 해당 사진은 지난 주 선수의 영입 오피셜 사진으로 재현되었다.
6피트 3인치 (190cm)의 인상적인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는 흐라번베르흐는 스피드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자원이기도 하다. 상대를 제쳐내고 전방으로 뛸 수 있고 팀 동료들을 위한 공간을 창출해낼 수 있을만큼의 힘과 속도를 겸비한, 강한 다리를 가지고 있는 선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리버풀의 고위급 영입팀 인사들은 흐라번베르흐에게서, 우승컵을 수집하던 그 시절 리버풀에서 핵심 톱니바퀴 역할을 수행해줬던 바이날둠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흐라번베르흐는 아약스에서 20살까지 몸담으며 일찍이 100경기 이상의 출전 기록을 본인의 포트폴리오에 담았고, 당시에는 삼미들의 좌측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였었다.
2020년 챔스 조별리그에서 리버풀을 상대로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지만, 2-2의 스코어로 마무리된 아탈란타 전에서 흐라번베르흐의 활약상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선수에 대한 리버풀의 관심도 커져갔다.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흐라번베르흐는 8살 때 아약스 유소년 아카데미에 입단했었다. 후술할 데니스 더한 코치는 흐라번베르흐가 아약스 입단 초기 시절 만났었던 유소년 코치들 중 한 명이다.
"어떤 재능이 꽃을 피울지 피우지 못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더한 코치가 암스테르담에 소재를 둔 언론사, 헷파롤 (Het Parool)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함정이랄 게 너무 많거든요. 이 선수가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만큼의 성격과 인격을 함양하고 있을까? 기술적, 전술적, 신체적 성장은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을까? 성장해온 환경은 어땠을까? 이런 것들이죠. 하지만 라이언은 괜찮아요. 여전히 라이언에게서는 특유의 미소가 보이거든요, 선수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에요."
한편 성장 속도가 워낙에 빠르다보니, 가끔은 선수가 안일한 것 같은 인상을 줄 때도 있었는데, 더한 코치에 따르면 언젠가 유소년 경기를 앞두고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대상으로 팀토크를 진행하고 전술 플랜을 설명해준 뒤 질문이 있는 선수가 있냐고 물어봤을 때, 흐라번베르흐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고 한다. "좀 이따가 그릴드 치즈 샌드위치 먹고 싶은데, 식당 문은 언제 여나요?"
하지만 흐라번베르흐는 텐하흐 감독의 지도 아래 성인 레벨에서, 본인의 재능을 꽃피웠다. "가지고 있는게 많은 녀석입니다, 특히 공격적인 부분에서요. 하지만 동시에 고생스러운 일을 맡는 데에 대한 이해도도 있어요." 흐라번베르흐에 대한 텐하흐 감독의 평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1-22시즌, 흐라번베르흐는 90분당 3.9회의 '드리블 돌파 시도'를 기록했었고, 이는 에레디비시 미드필더 상위 5퍼센트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여기에, '도움 이전 패스' (득점 상황의 기점 패스) 역시도 11개로 리그 내 최고 기록이었고, 선수의 패스 중 '프로그레시브 패스' (볼의 위치를 10미터 이상 전진시키거나 상대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전달되는 패스)로 식별되는 패스의 비율은 16퍼센트에 달했다.
2022년 여름에도 흐라번베르흐는 리버풀의 중원 타깃 리스트 상단에 있었던 이름이지만, 당시 리버풀은 아약스에 20m파운드를 지불했던 바이언에게 밀려났었다.
이적한 바이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긴 했지만, 이러한 상황은 흐라번베르흐에 대한 리버풀의 애정 어린 시선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도리어, 선수가 다시 시장에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리버풀에게 환기시켰을 뿐이었다.
바이언에서는 현장 바깥에서 불었던 그 모든 변화의 바람들 또한 새로운 리그에서 본인의 이름을 떨쳐보려는 젊은 선수에게 힘든 시간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제, 흐라번베르흐는 본인의 역량을 잘 녹여낼 수 있는 시스템과 플레이 스타일을 갖춘 팀, 그리고 본인을 진정으로 인정해주는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실제로 클롭 감독의 존재는 흐라번베르흐가 리버풀 합류를 마음먹는데 있어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요인이었다. 흐라번베르흐는 기록으로 증명되는 클롭 감독의 유망주 육성 능력을 알고 있고, 본인도 그렇게 한층 높은 수준의 선수로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뿐 아니라, 구단에 합류하기 전 반다이크, 각포와도 리버풀에서의 삶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눴던 흐라번베르흐다.
이번 A매치 휴식기 때는 흐라번베르흐가 네덜란드 U21 대표팀의 콜업을 거절하는 일이 있었는데, 선수의 이러한 결정은 자국 내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몰도바, 북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서 선수를 기용할 수 없게된 U21 대표팀의 미카엘 라이지거 감독은 흐라번베르흐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꼬집었고, 성인 대표팀의 로날드 쿠만 감독 또한 네덜란드 축구협회의 나이젤 더용 테크니컬 디렉터가 선수와 접촉해 결정에 대한 본인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전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미 네덜란드 대표팀에서 11경기의 A매치를 소화한 흐라번베르흐는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 될지도 모르는 9월 16일 울브스 원정 경기를 앞두고, 머지사이드에 잔류해 훈련에 시간을 쏟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팀이 산뜻하게 시즌 스타트를 끊은 상태에서, 새로 꾸려진 중원진에 본인만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만만찮은 일임을 알고 있지만, 흐라번베르흐는 그런 도전 과제를 정면 돌파해낼 계획이다.
올 여름 U21 유로 대회가 끝나고서도, 새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컨디션이 최고조에 올라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휴가 일정을 잡지 않았던 선수가 바로 흐라번베르흐다. 먼발치에서 지켜보고만 있는 것에도 지칠만큼 지쳤다. 바이언에서 사실상 처음 역경이란 역경을 맞닥뜨렸던 이 선수는 이제 그때의 경험을 연료 삼아 본인이 여전히 유럽에서 손꼽히는 미드필더 유망주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고자 한다.
지난 일요일 아스톤 빌라와의 경기가 킥오프되기 전, 'You’ll Never Walk Alone' 응원가가 울려퍼지자 흐라번베르흐는 새 보금자리를 슥 둘러보더니 이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 여름 내도록 기다림의 굴레를 감내해야 했지만, 결국 선수와 구단은 그들이 원했던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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