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장문) 펩 과르디올라, 조세 무리뉴, 그리고 모든 걸 바꾼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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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기 전에, 이 기사는 2024년 1월 30일 기사임을 알립니다.
바르셀로나에서 4년간, 펩 과르디올라는 3번의 라리가, 2번의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2번의 코파 델 레이를 포함해 1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시간을 거슬러 축구사의 한 결정은 큰 두 갈래 길을 나눕니다.
1998년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는 슬라이딩 도어즈라는 단어를 유행어로 만들었습니다.
10년 후, 축구는 *슬라이딩 도어즈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역주 - 슬라이딩 도어즈: 작은 차이가 아예 다른 두 결과를 불러일으킴을 뜻하는 용어
2008년 여름, 바르셀로나는 레이카르트 감독 아래에서 불분명한 미래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연속으로 무관인 시즌들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라리가에서 3위를 기록했으며, 베르나베우에서는 굴욕을 겪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전을 앞두고 우승을 확정 짓자, 베르나베우에서는 바르셀로나 선수단이 레알 마드리드를 향해 *파시요를 해주었습니다.
*역주 - 파시오: 우승팀을 축하해주기 위해, 경기 시작 전 양옆으로 늘어서서 우승팀 선수들이 입장할 때 박수를 쳐주는 관례
바르셀로나는 2008년 5월 베르나베우에서 4-1의 대패를 당했고, 레이카르트 감독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구단을 떠났습니다.
당혹과 굴욕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4-1로 패배를 당하고 있는 와중에, 베르나베우의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당시 바르셀로나의 회장인 후안 라포르타를 향해 "라포르타 제발 남아줘!"라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경기장 밖에서는, 에이스 호나우지뉴는 경기장보다 나이트클럽에서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호나우지뉴가 훈련에 지쳐 쓰러져 잠이 들기보다, 밤새 도시의 불빛 아래에서 춤을 추다 지쳐 잠이 든다는 사실은 바르셀로나의 무너진 규율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호나우지뉴의 불성실함, 체중 증가, 사생활 문제는 분명 레이카르트의 떠나가는 발자국을 재촉하는 요소였을 것입니다.
마드리드 팬들의 라포르타를 향한 외침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라포르타는 그만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24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고, 레이카르트는 바르셀로나가 베르나베우에서 느낀 모든 당혹감과 굴욕감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카탈루냐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보스가 될까요?
당시에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 감독은 바로, 모든 축구 실용주의자들의 탑, 조세 무리뉴였습니다.
무리뉴 감독은 바비 롭슨과 루이스 반 할 감독의 보좌로서 바르셀로나에서 업무를 맡은 경험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포르투에서의 놀라운 유럽대항전 우승, 첼시를 우승으로 이끈 인상 깊은 경기력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그들의 "슬라이딩 도어즈" 순간을 이때 맞게 됩니다.
유럽의 최고급 감독이 아닌, 전혀 검증되지 않은 초보 감독을 바르셀로나 B팀에서 승격시켜 바르셀로나라는 거대한 구단을 이끌도록 합니다.
펩 과르디올라.
그들이 선택한 남자의 이름입니다.
축구사를 바꾼 그 결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용주의가 아닌 낭만주의가 필요하며, 방법, 의견, 본능이 아닌 바르셀로나의 철학과 DNA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크루이프와 과르디올라는 친밀한 관계였고, 그의 밑에서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에서 선수로 뛰었습니다.
펩 과르디올라를 이해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요한 크루이프, 이 남자를 이해해야 합니다.
크루이프란 곧 바르셀로나이며, 1974년 라리가와 1978년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한 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4번 연속 1부리그 우승과 유러피언 컵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크루이프는 과르디올라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1990년 라우드럽부터 로날드 쿠만까지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이 가득한 바르셀로나의 1군에 당시 19세였던 펩 과르디올라를 크루이프는 합류시킵니다.
크루이프는 과르디올라의 재능을 눈치챘습니다. 스페인 언론인 루 마르틴은 과르디올라를 잘 알고 있으며, 2001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책 La Meva Gent, El Meu Futbol(나의 사람, 나의 축구)을 대필했습니다.
"카탈루냐에서는 "Seny"와 "Rauxa"라고 부릅니다. "Rauxa"는 바르셀로나의 전설적인 주장 푸욜이고, 충동과 욕망을 뜻합니다."
"바르셀로나의 "Seny"는 펩입니다. 두뇌죠."
"펩은 요한(크루이프)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팀에 의미를 가져왔습니다."
"요한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피가 섞인 아들, 조르디. 그리고 축구의 영혼이 섞인 아들, 펩."
조르디 크루이프는 아버지와 과르디올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조르디는 그의 아버지가 브레시아, 로마, 알 아흘리, 멕시코의 도라도스에서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신예 감독이었던 과르디올라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고 말합니다.
조르디 크루이프는 과르디올라가 2006년에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에 몇 달 동안 그의 아버지와 자주 만났다고 더했습니다.
"아버지는 펩이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신 것 같아요."
때때로,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 등 그가 감독으로서 지휘한 모든 구단이 부자이며 거대 구단이라는 사실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과르디올라가 규모가 작은 클럽에서는 그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그 클럽들은 바르셀로나 B보다는 훨씬 더 거대한 클럽일 것입니다.
과르디올라는 선수 생활 은퇴 후 바르셀로나 B팀을 지휘했다.
37살이었던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 B팀을 맡은 뒤 첫 기자회견에서 말했습니다.
"이제 감독으로서 0부터 다시 시작할 겁니다."
과르디올라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 B는 0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직전 시즌 마지막 10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씁쓸한 강등을 맛보았습니다.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 B팀 첫 경기는 반욜레스를 상대로 한 아주 작은 친선경기였습니다. 작은 경기장과 거칠은 잔디 위에서 과르디올라는 첫 번째 경기를 지휘하게 됩니다.
바르셀로나 B는 첫 3경기에서 1승을 거두게 됩니다.
만레사에게 2-0으로 패한 뒤,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에 대한 믿음을 시험받게 됩니다. 경기장에서 공을 점유하는 전술이 4부리그에서 먹힐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는 패배 후 수요일 훈련장에서 결심했습니다.
"경기장이 너무 작아. 바꿔야겠어."
"지난 이틀간 끊임없이 의심했습니다. 그 순간 생각했습니다. "작은 경기장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더 큰 경기장에서도 또 다른 수준 높은 축구를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죠."
"저는 훈련장에 도착해서 "이것이 제가 믿고 있는 것"이라며,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설득에 실패했죠."
"처음 맡는 감독직이었기 때문에, 과르디올라는 어설펐습니다. 그리고 이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훈련을 통해 증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펩 과르디올라가 증명할 필요가 없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도메 토렌트입니다.
토렌트는 같은 4부의 지로나를 감독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선수로서 존경하던 과르디올라가 그에게 합류하길 바랐을 때 그는 아이처럼 신나서 펄쩍 뛰었습니다.
토렌트는 2018년 뉴욕시티FC에서 수석코치 역할을 맡기 위해, 맨체스터 시티를 떠나기 전까지 과르디올라의 오른팔로 11년의 세월을 함께했습니다.
"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일상에서 사람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합니다."
"그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대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배워갑니다."
"그는 바르셀로나 B를 훌륭한 축구를 구사하는 팀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은 이제껏 그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축구의 아이디어를 듣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좋은 선수진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세르히오 부스케츠, 페드로, 티아고 알칸타라는 신인이었지만, 과르디올라의 팀에서 무자비한 엔진이었습니다."
전문적인 요소들이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상대에 대한 스카우팅 그리고 비디오 분석까지, 디테일의 수준이 전례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11시 밤 통행금지, 새로운 벌금, 새로운 규율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펩은 매우 명확한 경계선을 구축했고, 그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그 누구도 행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라고 당시 팀의 주장이었던 마크 발리엔테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굉장히 공정했습니다"
바르셀로나의 당시 스포츠 디렉터이자, 현재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함께 일하고 있는 치키 베히리스타인은 과르디올라가 갖고 있는 완벽 추구에 대해 회상합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잉글랜드 리그 2에서 혼자만 프리미어리그 팀을 운영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는 선수들, 음식, 요리사, 여행 모든 부분에 신경 썼고, 모든 경기를 녹화했습니다."
"그는 정말 대단했으며, 그는 "언젠가 1군 감독이 되면, 난 이렇게 일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스페인의 4부 리그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미쳤죠."
출발은 조금 삐걱거렸으나, 과르디올라 아래에서 바르셀로나 B팀은 극적으로 개선되며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과르디올라의 업무 수행 능력은 바르셀로나 이사회에서 아주 좋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습니다.
토렌트는 "요한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 B 경기를 보기 위해 아내와 자주 찾아오던 것을 기억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죠. 그는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펩이 어떻게 행동하고, 움직이는지, 팀을 가꿔나가는지를 보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저는 펩에게 다가가 "요한이 널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과르디올라의 승승장구는 크루이프에게 조금은 기쁜 부담이 되었습니다.
과르디올라에게 그의 팀이 3연승을 할 때마다 그가 점심을 사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시즌 동안 5번이나 점심을 사야했습니다.
하지만, 팀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소수의 관중 앞에서 치진 레이카르트의 1군과의 경기에서 나타났습니다.
과르디올라는 팀의 일부에서 감독이 되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크루이프의 주간 스카우팅 보고서와 함께 아이두르 구드욘센의 추천은 펩이 바르셀로나 1군 감독에 적임자라는 사실을 이사회에 설득하는데 가장 주요한 요소였습니다.
구드욘센은 "현재 바르셀로나 B가 보여주는 경기방식은 아주 특별합니다."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들과 친선전을 치르는 동안,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군 팀 소속이었던 제가 2군의 경기를 보면서 "와 어떻게 저렇게 플레이하지?"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을 압박하려 했지만, 쉬이 되지 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 1군에게 그 경기는 당혹의 연속이었습니다. 호나우지뉴는 경기 시작 10분 만에 퇴장을 당했습니다. 또한, 보도에 따르면, 데쿠 역시 지속적으로 경기를 풀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펩 아래에서 바르셀로나 B가 보여준 경기력은 바르셀로나 이사회도 주목했습니다.
B팀의 승격과, 친숙한 인물, 레이카르트의 문제와 같은 요소가 휘몰아치며, 동시에 변화의 바람 역시 불어왔습니다.
이제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조세 무리뉴? 펩 과르디올라?
하비에르 살라이 마르틴은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바르셀로나의 재무 담당자로서 이 선택의 순간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새벽 2시까지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호나우지뉴를 비롯해서 바르셀로나의 무너진 규율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유럽 최고의 장군이 필요했죠. 누가 유럽, 아니 세계 최고의 장군이었습니까? 조세 무리뉴."
"규율에 대한 해결책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축구는 바르셀로나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무리뉴(사진의 왼쪽)는 1997년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에서 바르셀로나가 우승한 뒤, 당시 감독 바비 롭슨, 공격수 호나우두와 함께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바르셀로나 DNA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플레이하는 축구 스타일이죠." 하비에르 살라이 마르틴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요한 크루이프로부터 이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축구를 할 때 이깁니다. 그리고 크루이프의 수제자는 펩이죠."
"하지만, 무리뉴는 챔피언스리그 위너였죠. 그래서 참 많은 논쟁이 오갔었습니다."
"라포르타가 그때 말했었습니다. "우리는 무리뉴 방식의 축구를 할 수 없다. 그는 역습을 하는 수비 위주의 감독이고, 그것은 우리와 맞지 않는다"라고 말이죠."
"또한, 그는 신사적이지 않았죠. 그가 경기를 지배하려는 방식은 바르셀로나와 맞지 않았습니다."
살라이 마르틴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무리뉴와 과르디올라 둘 중 어느쪽으로도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남자가 개입했었습니다.
라포르타가 그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요한, 펩이 준비가 된 감독입니까?"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그 순간 바르셀로나 1군의 지휘봉은 검증되지 않은 과르디올라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설이 됩니다.
펩 과르디올라가 부임 첫 시즌 라리가, 코파 델 레이,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한 후의 사진.
https://www.bbc.com/sport/football/68082238
의역 다수
오타 오역 지적 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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